<연재> 일본 후쿠오카 ‘뚜벅이 힐링기’-1회

뜬금없는 여행이었다. 계획 같은 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즉흥적이었다. 6월의 어느 화요일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전에 함께 대만여행을 다녀왔던 친구다. “우리 일본 후쿠오카 가자. 나 이번 주에 안가면 안 될 것 같아….” 회사생활과 연애 문제로 스트레스가 폭발한 친구. 약 한 달 넘게 백수생활을 하던 나에겐 경제적으로 가능성 없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급한 대로 자기가 비행기와 호텔을 먼저 예약할 테니 돈을 마련하란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경비를 마련, 가장 싼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했다.

 

 

4일 뒤. 토요일 새벽 4시 반 청량리역 앞 광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만났다. 비행기는 오전 8시 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수화물을 부치고 하려면 적어도 2~3시간 전에는 도착해야했기에 첫차를 탔다. 둘 다 잠을 두세 시간도 못 잔 생태였지만 버스 안에선 수다 꽃을 피웠다. 사실 친구는 1년 전에 후쿠오카를 다녀왔었다. 때문에 여행일정을 구체적으로 잡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이왕 가는 거 맛집이라도 몇 개 알아볼까 해서 쪽잠 대신 핸드폰을 붙잡았다.

약 1시간 40분정도 걸려 도착한 인천공항. 부지런히 표를 끊고 짐을 부치고 일본에서 사용하기 위한 와이파이 기계와 콘센트 변압기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220V지만 일본은 110V이기 때문에 일본 여행시 일명 돼지코 변압기가 필수다.

 

 

여권을 확인하고 쇼핑을 위해 면세점에 들렀다. 둘 다 공복이어서 공항에서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면세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급히 커피만 하나씩 사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약 한 시간 정도 뒤 후쿠오카 도착. 어렵지 않게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무료 공항셔틀버스를 타고 후쿠오카공항역으로 간 뒤 전철로 갈아타고 숙소가 있는 텐진역으로 향했다. 일본 전철은 한국보다 살짝 작게 느껴진다. 전철뿐 아니라 버스, 식당들도 그렇다.

 

 

헤매지 않고 무사히 텐진역에 도착했다. 원래는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명한 라멘집의 오픈시간과 겹쳐 호텔엔 들르지도 못하고 캐리어를 끈 채 걸음을 재촉했다. 한국 관광객들 사이엔 ‘이치란라멘’ 집이 유명하지만 현지인들에게 더 유명한 ‘신신라멘’ 집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11시 오픈에 갓 10분이 지났을 뿐인데도 기다리는 줄이 길다. 그래도 테이블 회전이 빨라서인지 약 20분 정도 뒤 입장할 수 있었다. 가게 내부는 아주 좁았다. 주방은 약 서너 명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있고 비좁은 홀에도 세네명의 서버들이 있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착석했다. 합석을 해야 했다. 미국에서 온 한 커플이 같이 앉았다. 다행히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다. 기본 라멘 2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미국 커플과 인사를 나눴다 . LA에서 온 커플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오, 우리는 내일 서울로 떠나”라고 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이 근사했다. 면이 아주 얇았다. 국물은 진하고 고소했다. 테이블 가운데 여러 가지의 소스가 놓여있어 취향에 맞춰 넣어 먹으면 된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한 그릇 뚝딱. 친구가 마저 먹는 동안 가게 내부를 살피니 유명인들의 사인이 가득했다. 후쿠오카 여행 첫 스타트가 좋다.

 

 

밖으로 나오니 덥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골목골목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타이틀은 ‘뚜벅이 힐링’.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일본의 향을 물씬 느끼며 걸어 다녀보고 싶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걸으며 이곳저곳 감추어진 모습들을 많이 보고 싶었다.

호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꽤 오래된 호텔 같았다. 그래도 깔끔하고 조용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짐을 정리했다. 우리 방은 7층에 있어서 창으로 후쿠오카의 작은 동네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짐을 정리한 뒤 길을 나섰다. 텐진의 골목들을 걷기로 했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텐진의 첫 인상은 서울의 명동과 합정동을 떠올리게 했다. 큰길가엔 백화점들이 모여 있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작고 아담한 편집숍과 카페가 즐비했다. 걷기만 하는 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햇살은 따갑지만 중요치 않았다. 공기가 선선해서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했다. 날씨도 우리를 돕는 듯했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풍경을 담았다. 이전에 오사카를 갔을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오사카와 달리 한산했다. 사람들도 전부 여유가 있었다. 편집숍에도 들어가보고 드럭스토어, 백화점도 구경하다보니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일본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아주 자그마한 크기의 카페를 발견했다. 크레페와 커피를 먹으며 저녁식사를 뭘로 할 지 의논했다. 블로그에서 유명세를 탄다는 닭고기덮밥집을 가기로 했다.

 

 

숙소에 잠깐 들렀다가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 나카스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강보다는 좁지만 그래도 강폭이 꽤 넓었다. 강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이 예뻤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한껏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우리에게 찾아올 시련을.

그렇게 도착한 식당. 웨이팅이 없었다. 신나서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직원이 예약을 했냐고 물어왔다. 즉흥으로 정했기에 예약을 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 기다려야 되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되는데 그때도 식사가 가능할지는 확답을 못 드린다”고 했다. 역시 맛집은 맛집이구나…. 하는 수 없이 쿨하게 포기하고 다른 식당을 찾았다. 원래 식사를 한 뒤 돈키호테(음식, 약, 생활용품 등을 싸게 파는 마트)에 들르고, 꼬치 집에서 맥주한잔을 마시기로 했지만 식사를 건너뛰고 나머지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전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돈키호테는 못 갔었는데 천국이 따로 없다. 없는 게 없는데다 굉장히 저렴했다. 앞서 텐진을 돌아다니며 본 길거리 드럭스토어보다 훨씬 저렴했다. 둘째날 저녁에 다시 들러 쇼핑을 하기로 했다.

저녁은 꼬치집에서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꼬치집. 이곳 역시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다. 가운데에선 직원이 쉴 틈 없이 꼬치를 굽고 그 주변으로 빙- 둘러 손님들이 앉게 돼있다. 일단 추천세트 한 개와 일본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던 닭껍질 그리고 우설을 시켰다.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까지. 맥주가 나오고 우린 피로한 몸에게 보답이라도 해주듯 쭉쭉 들이켰다. 목넘김이 참 좋았다. 꼬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자주 먹는다는 유자식초에 찍어 먹으니 느끼함도 잡아주고 맛이 배가 됐다. 구워주는 직원의 모습도, 퇴근한 뒤 들른 직장인들의 지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모습이랄까. 마침 한국 사람도 없어서 마치 내가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뜨거운 열기 앞에 있어서 그런지 맥주 한잔에 얼굴이 빨개졌다. 아쉬운 대로 꼬치를 다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대표적인 편의점은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가 있다. 워낙 편의점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친구가 하루에 한군데씩 꼭 들르자고 했다. 이날은 패밀리마트에 들러 주먹밥과 야끼소바, 캔맥주를 샀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야식을 먹었다. 지친 다리를 풀어주고 나름 성공적인 첫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후쿠오카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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