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지지 않는 꽃-살림살이마다 꽃
고색이 창연하다. 어매의 장사이력과 거의 비슷한 나이의 쟁반들.
우그러져 있거나 굽어져 있거나 빛바랬거나, 상관없다. 어매들의 손에 가닿으면 모두 “찔겨, 암시랑토 안해”라는 무심한 듯 유정한 칭찬을 듣고 산다.
‘용모단정’하다고 차별적으로 환영하거나 우대하지 않는 장바닥. 함부로 내쳐지거나 버려지지 않고 오늘도 좌판에 당당히 올려진다. 아무리 낡았어도 꽃들이 거기 피어 있어 남루하지 않다.
국화, 모란, 장미, 백합, 난초 흐드러진 양은쟁반 위로 간재미, 병어, 덕자, 서대, 낙지, 갈치….
어매들이 반기는 순간은 쟁반 위에 놓인 생선들이 오늘의 임자를 만나 팔려나가고 숨은 꽃들이 환히 드러나는 순간. 잠깐일망정 어매들의 마음도 환히 펴진다.
“왼갖 곡석, 안 까분 것 없이 다 까불랐제.”
어매의 굽어진 몸처럼 평생의 노동을 제 몸에 새긴 늙은 키 하나.
성성했던 시절을 멀리 지나왔다.
하염없이 까부르는 몸짓 속에 쭉정이를 날리고 알맹이를 찾는 힘겨운 도정을 어매와 더불어 오랜 세월 같이 해온 키. 해지고 터진 곳마다 덧댄 것 투성이다.
“강헌 무쇠도 닳아진디 강헌 일에 안닳아지겄능가.”
아직 고운 티가 남은 저 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늙어진 키의 한 귀퉁이를 꿰맨 꽃무늬 헝겊. 살려야 ‘살림’이니, 낡은 것들의 연대로 이룬 또 한 번의 살림이 애틋하다. 아끼고 간수하는 손길이 그 존재를 귀하게 한다. 거기 살갑게 꽃을 피워낸다.
공동으로 쓰는 모정의 목침 하나에도 어매들의 손길 닿으면 꽃이 핀다. 정읍 흑암동 상흑마을 모정의 목침들은 저마다 다른 꽃들을 품고 있다. 소박하되, 정성을 다해 그린 꽃들.
그 꽃들을 베고 누워 자는 잠은 꽃잠이런가.
일에 쫓겨 늘 자울자울, 다디단 꽃잠을 떨치고 일어나야 했던 어매들의 수많은 새벽. 고단한 삶에서 잠시 비껴난 쉼과 잠과 꿈이 그 꽃베개에 깃들기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