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세상은 갈수록 야박해지고 삭막해 갑니다.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의리가 메말라지면서 형제간의 의리나 신의도 사그라들기만 합니다. 친구나 동료들 사이의 따뜻한 인정조차 식어가면서, 눈만 뜨면 무서운 사건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니 두렵고 무서울 때가 많기만 합니다. 그래서 다산은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에 인간의 윤리가 살아나고, 인간들 사이의 신의와 의리가 제대로 지켜질 가장 튼튼한 방법의 하나로 효제(孝弟),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덕목을 유독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효제’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확고한 자신의 논리를 공자나 맹자의 기본 유교정신에서 끌어왔습니다. “공자의 중심사상은 효제였을 뿐이다(孔子之道 孝弟而已)”라고 말하여 효제라는 내용 안에 학문도 도덕도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모두 들어있으니, 효제만 제대로 실천하면 세상의 일은 모두 해결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핵가족제도가 정착되고, 아파트 문화가 대세를 이루는 세상이 되면서, 부모와 함께 사는 생활도 어렵게 되고 이웃이나 형제들과의 소통이나 애정 나누기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삭막하고 무섭기만 한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다산의 저서 『흠흠신서』를 읽다보니 부모나 자식 사이에, 부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신의와 의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지킬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인정이 넘치게 되는가를 알게 됩니다.

“중국 원나라 때 진윤부(秦潤夫)의 후처 시씨(柴氏)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 전처가 낳은 아들 하나도 어렸다. 진윤부가 병이 들어 죽게 되자 후처에게 전처가 낳은 아들을 부탁하고 죽었다. 시씨는 두 아들을 차별 없이 길렀다. 길쌈으로 고생스럽게 일하여 학교 공부까지 시키며 길렀다. 어느 때에 행실이 불량한 소년이 장복(張福)의 가족을 죽였다. 장복은 가해자로 시씨의 큰 아들을 지목하여 고소했다. 법에 의하면 사형을 당해야 하는데, 시씨가 작은 아들을 이끌고 관아에 나아가 울면서 호소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나의 작은 아들이지 큰 아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작은 아들도 ‘나의 죄를 형에게 덮어씌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신문을 해도 작은 아들은 말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아들이 시씨의 소생이 아닌가 여겼다. 그러나 뒤에 파악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관에서는 시씨의 행의를 정의롭게 여기고 감탄해서 말했다.

‘아내는 사랑하는 자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남편의 신의를 지켰고, 아들은 죽음에 나아가면서도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리를 지켰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감정으로 최고의 경지이다’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마침내 두 아들을 모두 석방하는 판결을 내렸다”(兄弟爭死)

전처 아들을 잘 키우라는 남편의 부탁을 지킨 후처 아내, 어머니의 뜻에 따른 아들,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니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요. 담당관원의 보고를 받은 황제는 시씨 집에 정려문을 세우게 하고 부역을 감면하는 조치를 내렸다니, 이 일 또 더 아름다운 조치가 아닌가요. 이렇게 신의와 의리가 살아나는 세상이 언제쯤 올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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