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부부 해로 ① 강경마을 김병수·박순애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중)

 

함께 청춘을, 중년을 통과해왔다.

흑백사진 속 젊은 부부는 이제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순창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 김병수(81), 박순애(78) 부부.

“시집이라고 오는디 가매가 빤듯이 못와. 워낙에 지픈 산중이고 질은 쫍장한게. 긍게 안에서 막 도글도글 궁글어댕겨.”

박순애 할매는 스무 살에 순창 풍산면 대가리 고향 집을 떠나 이 깊은 산골 강경마을로 시집왔다.

“널룬 질도 없고 순 바우만 있응게 바우 사이로 포도시 댕갰지”라고 말하는 김병수 할아버지.

“말하자문, 송아지를 키워서 어른소가 되문 소가 요 마을을 못 나갈 정도였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큰 소는 나가기가 좀 애러웠다”고 한다.

이 깊으나 깊고 해먹을 것 없는 산골에서 부부는 딸 셋 아들 둘 5남매를 낳아 키웠다.

“내가 글을 모린게로 자식들은 눈을 뜨여야겄다 그 맘 하나로 살았어”라고 말하는 박순애 할매. 시집와서 보니 “식구가 도합 열야달”이었단다.

“줄줄줄 앙겄어. 시할아부지 시할머니 시아부지 시어머니에 요 양반이 큰아들인디 형제간이 아홉, 부모없는 친척 애기들이 너이.”

막둥이 시아재는 세 살, 친척 애기들 중에 막내는 네 살이었다. 열네 살 큰시누와 더불어 스무 살 각시가 빨래하고 밥 짓고 온식구를 건사하며 살았다.

먹을 것은 없고, 끄니끄니마다 엔간한 집 대사 치르기와 같은 날들이었다.

“밥 한번 지을라문 샘베저고리가 다 젖어불어.”

그 시절 끄니끄니 자식들을 배부르게 먹이지 못한 한이 어매 가슴에는 영쳐 있다.

“호강시롭게 산 사람 없어, 여그 산골에서. 놈 허는 짓을 못하고 살았어.”

“소 키우고 맴생이 키우고 벌 키우고 누에도 키우고”

그 온갖 것들을 키워서 자식들을 키워냈다.

지나온 생애를 “포도시 살아냈제”라고 한 줄로 요약하는 김병수 할아버지. 생의 굽이굽이를 포도시 헤치고 건너나와 오늘 여기에 당도했으니, 서로를 마주보는 눈에 그 세월이 서린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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