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고경(古經)에는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라고 말하여 본말이 있고 종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1801년 신유옥사로 시작된 다산의 귀양살이, 처음에는 경상도 장기에서 시작했으나, 그해 겨울에는 다시 체포되어 국문을 받고 또 감옥에 갇혀 있다가 유배지가 바뀌어 전라도 강진으로 떠납니다. 중형 정약전과 함께 떠나 나주읍의 북쪽 5리 지점인 밤남정 마을에서 형제는 생의 마지막 동숙(同宿)을 하고 헤어진 것이 그해 음력 11월 22일이었습니다. 거기서 형은 흑산도로 아우는 강진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음력 11월 하순부터 강진의 유배생활을 시작한 다산은 동문 밖 주막집에 거처를 정하고 신산한 귀양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읍내의 어느 누구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노파가 운영하는 주막집에서 시작된 삶, 그런 귀양살이가 18년에 이르도록 긴 세월일 줄이야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주막집 주모의 인정어린 접대에 다산은 울분도 억울함도 모두 녹이고, “나는 이제 겨를을 얻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학문에 몰두하자”라고 다짐합니다. 그런 결과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반대한 500권이 넘는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1818년 음력 9월 14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18년의 삶을 정리하고 다산초당을 떠나던 다산의 해배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감으로 정리되었으니 다름 아닌 ‘다신계(茶信契)’의 결성이었습니다. 초당에서 가르친 18제자와 주막집에서 가르쳤던 여섯 제자들의 인적사항을 열거하고 계안(契案) 즉, 약속의 문서를 남기는 아름다운 끝을 이룩해 놓았습니다. “인간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럿이 모여 서로 즐겁게 지내다가 헤어지고 나서 서로를 잊어먹는다면 이거야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다”(다신계절목)라고 전제하고, 다산초당으로 옮긴 1808년부터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냈다면서 그런 우정을 잊지 않고 서로의 학문을 격려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모임을 계속하자고 만든 계(契)가 바로 ‘다신계’였습니다. 헤어지던 때가 1818년 음력 8월 그믐이었으니, 금년으로 딱 200주년이 되었습니다. ‘다신(茶信)’이란 다산에서의 약속이기도 하고, 차를 마시는 일과 차를 마시는 모임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내용에는 다산의 차를 반드시 선생의 고향으로 보내주라는 약속이 큰 비중으로 적혀있습니다. 

더구나 주막집 시절 신분이 낮은 제자들까지 모두 챙겨, 다산초당의 제자들 못지않게 그들은 유배 초기 참으로 어렵던 시절에 말벗이 되어주고, 글을 배우며 다산의 근심과 걱정을 함께 해주었던 고마움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깊은 유배살이의 마지막 끝맺음이었던가요, 주모의 아름답고 훈훈한 인정으로 시작된 유배살이의 처음이 글 잘하고 시 잘하는 제자들과 만남을 계속하자는 약속으로 끝을 맺었으니, 다산에게는 분명히 사유종시(事有終始)의 원칙이 지켜진 유배살이였습니다. 우리는 며칠 전 강진에 가서 해배200주년 기념행사도 치렀고, 강진 다인들의 주선으로 다신계 200주년 행사도 제대로 치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다산의 정신과 뜻을 실제 일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행하고 실천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하기만 빌어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