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낙원’ 해평습지에 또 삽질을...국토부=국토파괴부
‘철새낙원’ 해평습지에 또 삽질을...국토부=국토파괴부
  • 정수근
  • 승인 2018.10.09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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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에서 보내온 편지>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흑두루미의 비행.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무리가 내려앉을 곳을 찾아 낙동강 위를 날고 있다. 2013년 10월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도래지 해평습지. 이곳은 매년 10월 22일경이면 흑두루미떼가 특유의 뚜루뚜루 소리를 내지르며 모래톱에 내려앉는 장관을 보게 되는 '생태 명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들이 연출하는 장대한 광경을 보게 되면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일어나는 곳이라, 새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들이나 철새 생태조사를 위해 탐조하는 생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가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2014년 10월

 

필자 또한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국장 등과 함께 위장막 안에서 이들이 날아드는 장면을 보면서 숨죽여 감탄사를 남발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합니다. 비단 흑두루미떼뿐 아닙니다.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는 재두루미, 그리고 역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고니, 쇠기러기, 청둥오리떼 등 각종 철새들이 늦가을 이맘때부터 날아드는 중요한 생태거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해평습지에 4대강사업 이후 또다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되고 있는 놀라운 현장을 얼마 전 목격하게 됐습니다. 새로 들어서는 구미 제5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한다는 명목으로 해평습지의 가장 중요한 핵심 생태공간 사이로 대규모 교량을 건설하는 공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말이 나오면 시끄러울까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 낙동강 최대 철새도래지에서 소리 소문 없이 교량공사를 하고 있는 국토부

철새도래지, 상수원보호구역에?

이곳은 유명한 철새도래지이기 이전에 구미시민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공간입니다. 바로 구미시민들이 마실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입니다. 교량 건설 예정지 바로 1킬로미터 아래에 구미시민들이 마실 물을 끌어오는 구미광역취수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강 건너 맞은편 고아읍엔 정수장까지 가동되고 있습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런 중요한 곳에서 벌이는 새로운 교량공사라니, 두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다녀가 본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이미 너무 많은 교량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됩니다. 이미 구미 해평면과 고아읍을 연결하는 숭선대교라는 큰 교량이 있고, 지금 교량건설을 시작한 곳에서 2킬로미터 하류엔 고아대교란 이름의 대규모 교량을 건설중입니다. 바로 그 아래엔 산호대교란 구미 최대의 교량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생태적으로도, 식수원 보호란 측면에서도, 너무나 중요할 수밖에 없는 공간에 이렇게 많은 교량이 이미 있는데도 또다시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어떤 명분과 이유를 떠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 강에 놓인 선을 따라 교량이 가설될 예정이다.

 

구미5공단을 위해서라면 기존에 나있는 25번 국도와 지금 있는 숭선대교나 건설중인 고아대교를 활용해도 얼마든지 가능할 법하건만 굳이 새로운 교량을 꼭 건설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이 공사를 강행하는 주체는 국토교통부 산하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입니다. 국토교통부는 4대강사업의 주무 행정부서로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이자 지금은 감옥에 가 있는 MB의 사기공사라고 판명이 난 4대강사업을 강행한 주무부서란 흑역사를 가진 기관입니다.

MB의 행동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독일의 국제적 하천복원 전문가인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로부터 '자연에 대한 강간'이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해평습지에 심각한 생태파괴사업을 강행한 주무기관입니다.

4대강사업 기간 국토부는 이곳 해평습지에 수백대의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들여 아름다웠던 모래의 강 해평습지를 거의 도륙하는 수준의 준설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그런 국토부가 또다시 해평습지에 대규모 토건공사를 강행한 것입니다.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는 기관이라면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해평습지에 또다시 '삽질'을 강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국토부는 정녕 해평습지의 마지막 남은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으려는 것인가"라는 탄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 4대강사업 당시 수백대의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동원, 해평습지를 도륙했다. 철새들이 오건말건 상관없이 이런 짓을 강행한 것이 국토부다.

국토교통부 아닌 국토파괴부

이는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 해평습지를 두 번 죽이는 행위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도로 건설로 환경단체들 사이에선 "국토교통부가 아니라, 국토파괴부라 불러야 한다"란 오명까지 얻고 있는 기관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도로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사실 지금의 환경 문제의 많은 부분은 너무 많은 도로건설로 인해 발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멀쩡한 산을 깎고, 뚫고, 산과 강이 연결된 생태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공간 사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직선의 도로를 뚫고 이로 인해 생태계를 단절시키고, 그렇게 단절된 공간에서 야생동물들은 쏜살같이 내달리는 차들에 치여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 낙동강 바로 옆 산을 절개해 도로를 닦았다. 산과 강을 이어주는 생태계는 완전히 단절되어버렸다. 이것이 이 나라 도로사업의 현주소다.

 

심지어 지리산에서 어렵게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백두대간을 타고 이동하다 김천 수도산 부근의 한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사건도 접하게 됩니다. 이는 반달가슴곰이기에 나오는 뉴스일 뿐 한해 로드킬로 죽어나가는 야생동물의 수는 통계조차 안 잡힐 정도입니다. 이것이 그간 국토부가 무분별하게 뚫어놓은 도로 때문에 벌어지는 생태적 재앙의 일단입니다.

대한민국이란 좁은 땅을 사통팔달로 도로를 뚫어 마음껏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매일같이 이동할 국민이 얼마인가요? 기껏해야 휴가철 행락객이 집중할 때 차량이 막히는 것을 제외하곤 지방도로는 텅텅 비어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텅텅 빈 멀쩡한 지방도로 옆으로 4차선 국도가 새로이 놓인 것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되는 한심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바로 국토부에 의한 '도로 공화국' 대한민국이 완성되어 가는 형국입니다.

정책이란 합리성과 철저한 공공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더구나 국민혈세가 쓰이는 일이 아닌가요? 과연 누구를 위한 새로운 도로건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토부 오직 그들의 존립을 위한 도로사업"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왜 국가기관을 믿지 못할 행정을 하고, 국민들은 그런 기관을 끊임없이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합니까?

 

▲ 해평습지 인근에 이미 세 개의 교량이 놓였다. 그런데 또 새로운 교량을 해평습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놓겠다고 한다. ‘왜?’란 물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구미5공단을 연결하려면 기존에 나있는 도로와 교량을 이용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 새로운 교량을 또 놓아야 하는가? ⓒ 구글지도

과연 누구를 위한 국토부인가

이런 형국에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에 대규모 교량공사라니, 그것도 상수원보호구역 안에서의 도로건설이라니 과연 이런 공사가 합당한 공사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낙동강에 들어선 4대강 사기사업의 산물인 콘크리트 보들의 수문을 활짝 열거나 그것들을 해체해 낙동강을 비로소 낙동강답게 만들려는 4대강 재자연화 방침을 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의 효과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철새낙원 해평습지입니다. 바야흐로 '해평습지의 봄'을 기대하고 있는 이때에 이곳에 웬 난데없는 새로운 토건공사란 말인가요?

 

▲ 철새도래지이자 상수원 보호구역인 곳에서 교량공사를 시작한 국토부

 

이달 말이면 뚜루뚜루 소리를 내면서 흑두루미떼가 날아올 것입니다. 고니와 쇠기러기떼도 날아올 것입니다. 비록 4대강사업 후 그 수가 급감해 걱정이긴 하지만 올해도 그 반가운 소리를 듣게 될 터인데, 그들을 맞이할 준비는커녕 이곳에 새로운 토건 삽질로 또 한 번 그들을 실망시키게 생겼습니다.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국토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기관 중의 하나가 국토부입니다. 그런 국토부가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해평습지를 4대강사업으로 이미 한 차례 심각히 망쳐놓고 또다시 새로운 토건공사로 해평습지를 두 번이나 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아니라 국토파괴부다"라는 오명의 역사를 또다시 쓰려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국토부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문제의 교량사업이 과연 꼭 필요한지 구체적 논거를 들어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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