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머리를 감겨 드렸습니다!!
선생님 머리를 감겨 드렸습니다!!
  • 김덕희
  • 승인 2018.08.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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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이곳 이발소까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오실 거라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어쨌든 선생님은 차례를 기다리다 이발의자에 가 앉으셨고, 난 한껏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려 노력하며 머리 감기기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손님 머리의 비눗물을 씻어내기 위해선 이발소 가운데에 위치한 난로 위의 물통에서 따뜻한 물을 떠와야 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보실 게 뻔했다. 바로 앞에 위치한 커다란 거울을 통해 이발소 한가운데가 훤히 비췄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고개를 잔뜩 수그린 채 바가지를 들고 난로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힐끔힐끔 선생님 쪽의 눈치를 살피며 큰 양동이 뚜껑을 열었다. 일단 바가지에 물을 담는 데까지는 무사 성공. 그런데 아뿔사, 바로 그 다음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양동이 뚜껑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이발소 안을 울렸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마주친 거울 안의 선생님 눈과 내 눈. 선생님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셨다. 난 얼른 눈길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양동이 뚜껑을 주워서 다시 덮고 부리나케 세면대 앞으로 와서 손님의 머리 감기기에 몰두하는 척 했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콩콩 뛰었다. 선생님이 나를 보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4학년 때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봤으니 거의 1년만에 다시 보는 셈이었다. 머슴살이 하느라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 때문에 선생님께서 우리 집을 여러 번 다녀가셨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였다. 5학년 신학기가 시작됐는데, 학교에 와야 할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어 찾아오신 것이었으리라.

선생님은 수업료 대신 교장선생님 댁에 여러번 땔감나무를 해다 드렸던 우리 아버지를 본 적이 있어 우리집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계셨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 친 후에도 계속 시선을 피하고 있자 선생님도 아마 내 마음을 알아차리신 듯 했다. 먼저 선뜻 내 이름을 부르거나 아는 채를 않으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머리를 다 깎으시면 내가 있는 세면대에 와서 머리를 감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마음이 안절부절했다.

 

▲ 사진=pixabay.com

 

이런 나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주인장은 재빠르게 선생님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마침내 이발이 끝났다. 선생님께선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감기 위해 세면대 쪽으로 다가오셨다. 선생님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선생님 뵐 면목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신 선생님은 애써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내 앞의 의자에 앉은 뒤 머리를 숙이셨다. 난 따뜻한 물을 조심스럽게 선생님 머리에 부은 뒤 비누칠을 하며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왠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매일 교실에서 얼굴을 마주쳐야 할 선생님을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뵙게 되어 가슴이 미어졌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잠자코 계셨던 선생님이 머리를 거의 감을 즈음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학교로 꼭 돌아오도록 해라."

난 순간 얼떨결에 "예!"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달아올랐던 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 했다. 선생님은 그날, 더 이상 어떤 얘기도 내게 하지 않으셨다. 일부러 그러시는 게 분명했다. 그냥 다른 손님들처럼 이발을 다 마치신 뒤에는 아무 말도 없이 이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창문 틈으로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난 마음이 다시 아릿해져왔다. 한참 뒤까지도 난 기분이 멍한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장날이라 손님들은 선생님이 가신 뒤에도 여전히 붐볐고 난 다시 일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제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루가 정말 바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발소 실내를 청소하며 주인장과 그의 아들을 힐끗 쳐다봤다. 그들은 벽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로 된 괘짝을 열어보고 활짝 웃으며 기분좋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 속에는 500원짜리와 1000원짜리 지폐가 수북했다. 괘짝을 뒤집으니 10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도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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