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뙤약볕 쏟아지는 활터에서

▲ 다 모였는가.

다시 또, 감 떨어지는 계절이 왔다. 지붕 위로 이따금 하나씩 감이 떨어지면 내 마음은 연못도 아니련만 파문이 인다. 가슴에 한가득 물이 차 있어서, 한 알의 감이 떨어질 때마다 출렁, 출렁, 하는 것 같다. 그 소리는 때로 떨어짐의 법칙 같은 다소 고상한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기도 하지만, 오매 내 간이 떨어졌는갑다, 하고 그렇게, 초랭이 방정 같은 자발을 떨게 하기도 한다.

한두 번 듣는 소리도 아니고, 한두 해 들어온 소리도 아니련만, 지붕 위로 떨어지는 감 소리는 어찌 그렇게도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것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여름날의 감이래봐야 뭐 갓난쟁이 주먹 크기도 안 되고, 메추리알 보다는 좀 더 클까말까한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그렇게나 깜짝깜짝 놀라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아하 내 간이 이렇게도 작구나, 하고 조금은 민망한 기분으로 눈을 깜빡깜빡 해 보기도 한다.

금년에는 눈을 깜빡깜빡 하는 횟수가 매우 많아졌다. 이른바 폭염이라는 놈이 달려와서 감나무를 마구 괴롭히니,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하는 그것처럼, 감들도 자살을 하는구나, 하고 탄식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방금 전에 퉁, 소리가 났는데 또 나고, 또 들린다. 이렇게 마구 떨어지다 보면 감이 빨갛게 익는 가을에는 아마 한두 개 정도밖에 안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감은 망하고, 세상도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조차 해봐야만 할 정도로, 아 덥다. 덥다, 너무 덥다. 아니 뜨겁다. 너무 뜨겁다. 방에 있으면 내 몸이 삶아지는 것 같고, 밖으로 나가면 내 몸이 구워지는 것 같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 어디에 있으란 말이냐. 와아 돌겠다.

 

▲ 일동 경례

 

이런 폭염 속에서 집궁식을 한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활터 초파정에서는 집궁식을 한다. 그것도 시들시들 어쩔 수 없다는 포즈로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니라 씩씩하게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한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싹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태워버리고 뭔가 새로운 것이라도 밀어 올릴 것만 같은 폭염 속에서 집궁식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열치열 중에 이열치열이요, 좋은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속담 속 이야기 그대로가 아닐 수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직장 따라 이사를 해서 고창 사람이 된 권동복. 그는 오래 전부터 국궁에 관심을 갖고 있었더란다. 하지만 직장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연이 닿지 않아서도 못했다. 활터는 각 시군에 하나 정도 있는 곳은 있고 없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거대한 도시 서울에는 종로통의 황학정 한 곳밖에 없다. 그런데 고창에는 활터가 세 곳이나 있다.

고창의 처가댁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권동복씨의 처가댁이 마침 무장면이었다. 무장면에서 해리의 활터 초파정까지는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하여튼 가깝다. 가까운 곳에 활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아마 감동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가살이가 이렇게도 좋구나 하고 새삼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날도 마침 토요일이고 하니 집궁식을 오전 일찍 하면 좋겠지만, 여름날의 오전 일찍은 농촌 사람들에게 일 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뙤약볕이 시들어지는 오후 늦게도 안 된다. 슬프지만 뙤약볕이 가장 극심하게 산천초목을 태우는 시간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가 활쏘기 취미 생활을 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시간인 셈이다.

우리의 사두 표명섭씨는 회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오후 3시가 제일로 적당하다 하여 그 시간에 집궁식을 거행한다고 발표했다. 그 시간에 온 세상 매미는 자글자글 울어대고, 꿩들은 여기저기서 꿩, 꿩, 소리를 내며 어딘가를 향해 푸드덕푸드덕 부지런히 날아가지만, 밭두렁 논두렁은 마치 화염방사기라도 몇 번 지나간 것 같아 보인다.

 

▲ 음복을 해야혀.

 

잡초는 벌써 전에 붉게 타 버렸고, 더 이상은 물을 줄 수 없다고 주인이 포기해버린 농작물은 시름시름 시들어 가는데, 여기저기 도처에 지렁이가 나와 있고, 지렁이를 먹이로 삼고자 달려든 개미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지렁이는 필사적으로 개미를 털어내고자 하지만, 개미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더 많은 개체수가 몰려와서 물고 늘어진다. 아따 이게 뭔 일이다냐, 하고 놀라서 곰곰 생각을 해보니 아 그렇구나. 머릿속으로 단막극 한 편이 지나간다.

뙤약볕이 흙을 뜨겁게 달궈 놓으니 흙 속의 지렁이가 견디지를 못하고 뛰쳐나온다. 뛰쳐나오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뛰쳐나왔겠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구경을 못해봤을 게 틀림없는, 이글이글 타는 뙤약볕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부림이나 쳐댄다. 살려고 나왔는데 왜 죽이려 드느냐고, 그렇게 고래고래 악이라도 써대는 것 같은 지렁이의 격렬한 몸부림은 지렁이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킬 따름이지만, 지렁이는 아직 거기까지는 모른다.

명제경각에 이른 지렁이를 발견하고 쾌재를 부르는 또 한 생명이 있으니, 어디에 먹을 것이 많은지 알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온 사방을 헤매고 다니던 정찰 개미들이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지렁이를 발견한 정찰 개미는 부리나케 본부로 달려가서 알리고, 본부에서는 여기저기 도처에서 작업 중인 일개미들을 소집해서 즉각 지렁이 사냥에 나설 것을 명했을 것이다.

그 적나라한 장면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감동이나 할 따름이다. 어느 쪽이 먹히고 어느 쪽이 먹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살고 싶다고, 살아야 한다고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나를 감동시키고, 너를 먹고 싶다고, 너를 먹어야만 우리가 산다고 새까맣게 달라붙어 지렁이를 물고 찢는 개미들은 또 개미들대로 나를 감동시킨다.

이 경이로운 사태가 결국은 110년 만에 왔다고 하는 폭염 때문이니, 110년 전의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 또한 경이롭다. 내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110년 전의 어디에 와 있는 것만 같다.

 

▲ 아따 뜨겁다.

 

아아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몽사몽으로 헷갈려 하다가는 거리의 잡초들처럼 붉게 타버리기 십상이다. 나는 지금 110년 전의 어디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2018년 8월 어느 하루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초파정에서 치러지는 권동복씨의 집궁식을 참관코자 나와 있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약속된 시간 3시가 임박했는데도 사람은 별로 없다. 뭐냐 이거. 왜 이렇게 출석률이 저조한 거야?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모두들 나와서 축하해야 할 집궁식이 너무 쓸쓸해져 버리면 어쩌지?

그런데 아니다. 걱정도 팔자라고 했던가. 3시를 넘어 10분쯤 되니 이쪽에서 저쪽에서 하나씩 둘씩 속속 모여든다. 그 표정들이 사뭇 비장하다. 어디에 무슨 전쟁이라도 터져서, 가슴에 한가득 무찌르자 나쁜 놈들, 결기를 품고 달려온 의병들 같다.

“워매 참말로 큰일이네 큰일이여 잉?”

“누가 아니라요. 내 가심이 그냥 싹싹 타들어 간당게.”

“자네 가슴은 이제야 타 들어가는가. 내 가슴은 진즉에 타 버렸네.”

“아니 그러믄 자네는 시방 가심도 없이 나왔단 말이여? 워매 참말로 이것이 뭔 일일까 잉?”

농담은 보약이다. 돈도 안 들어가는 보약이다. 사양 말고 실컷 먹어 두시라. 그러고 보니 이런 날 이런 시간의 집궁식 자체도 보약이다. 이런 날 이런 시간에 집구석이나 지키고 있어본들 나오느니 한숨이요, 탄식이요, 하늘도 무심하다는 투의 쓸데 하나도 없는 원망밖에 더 있겠는가.

각자 저마다의 궁시를 들고 사대에 오를 때 궁사는 근심도 걱정도 현실감각도 다 잊어버린다. 산다는 것이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각자 저마다의 궁시를 손에 들면 의지가 결연해지는 것은 궁사의 기본 덕목이요 습관이다. 한 손에 활을 들고, 한 손에 시를 들고 시위에 걸어서 두 팔이 찢어지도록 힘껏 당기면 가슴이 뚝뚝 소리를 내며 온 세상이라도 품을 듯이 벌어지는 것이니, 그 순간의 장쾌한 맛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까닭에 궁사는 과녁만 봐도 마음이 설레고 의지는 저절로 그냥 결연해진다.

 

▲ 선서

 

“아니 긍게, 유리조각을 맨발로 그냥 밟아버렸다고?”

“아니 내가 밟은 것이 아니라 이놈의 발이 매급시 유리조각을 밟고 있더랑게.”

집궁식 준비가 한창인데도 궁사들의 입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지난 며칠 동안의 사연들을, 무용담들을 펼쳐놓느라 정신들이 없다. 신발도 벗어 던지고, 양말도 당연히 안신은 맨발로 논두렁을 정신없이 오가며 물을 찾다가 유리조각을 밟고 말았다는 박관선씨의 무용담은 단연 압권이다. 그 바람에 그는 이제 논에도 못 들어가고, 다리도 절룩거려야만 하니, 웃음이 아니고는 봐줄 수가 없다. 그에 비하면 팔이 찢어져서 스무 바늘이나 꿰맸다는 누군가의 사연은 무용담 축에도 못 들고 그냥 엄살로만 들린다.

어쨌든 집궁식 준비는 다 됐다. 135미터 앞쪽에 있는 과녁이 오늘따라 아득해 보인다. 그것은 흡사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 꽂아놓은 무슨 이정표인 것만 같다. 누구는 밥상을 머리에 이는 자세로 뙤약볕을 피하고자 하고, 또 누구는 비 오는 날에 쓰자고 비치해놓은 커다란 우산을 우아하게 받쳐 들고 뙤약볕 속을 걷는다.

그렇게 각자 저마다의 포즈로 과녁 앞에 당도하고 보니, 상상 이상이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발밑에서 흙먼지가 폴폴 일어나고, 보폭을 크게 해서 움직이면 흙먼지가 우수수 일어나서 뺨을 친다. 이 땅이, 이 나라가 바야흐로 사막이라도 돼버린 것 같다.

“아따 오늘 고창 쪽에 소나기 온다는디?”

이른바 과녁의 신께 바치는 돼지머리를 교자상에 올려놓는 등의 진설이 한창인데 어디선가, 누군가 기쁨이 넘치는 소리를 한다. 누구냐.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코웃음을 치고, 그러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하늘을 본다. 이글이글하다. 십 초만 계속 보고 있으면 눈알이 그만 타버릴 것 같다. 손수건만한 구름 한 조각 없는 이런 날에 소나기라고? 기상청이 아마 더위라도 먹었는가보다.

 

▲ 모두가 바라봐주며 응원을 한다.
▲ 새내기 궁사의 첫 발시

 

그래도 사람들은 혹시, 혹시 하는 마음에 수시로 하늘을 본다. 과녁의 신께 인사를 드리면서도 힐끔, 남몰래 뭔가를 훔치기라도 하듯이 후딱 하늘을 보고, 막걸리 한 모금의 음복을 하면서도 힐끗, 안 보는 듯이 얼른 하늘을 쳐다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쳇, 소리를 낸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날에 소나기는 개뿔이나 무슨 소나기가 오시겠느냐.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어도 하늘은 여전히 그냥 안녕하시기만 하다. 소나기 소식이 가짜 뉴스건 말건, 우리의 새내기 궁사 권동복씨는 그저 싱글벙글이다. 바야흐로 오늘이 새신(新)자에 쏠사(射)자 신사 칭호를 받고 정식으로 사대에 서서 과녁을 향해 첫 시를 보내는 날이니 얼마나 설레겠는가. 얼마나 기쁘겠는가.

드디어 마지막 절차인 선서를 마치고, 신사는 사대에 섰다. 선배 궁사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서 응원을 하는 속에서 그는 시를 뽑았다. 눈꺼풀이 살짝 떨리고, 다리도 떨린다. 가슴을 마구 흔들어대는 설렘이, 흥분이 그는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발시!”

소리와 함께 신사는 힘껏 당겼던 시위를 놓았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하늘로 높이 솟구치다가 중간에서 툭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본 선배 궁사들은 싱긋, 싱긋, 미소를 띠어가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 신사의 첫 발시를 축하해 준다.

“오, 옳지, 옳지. 힘껏 당겨서 저 불 뿜는 태양을 한 번 맞춰봐라.”

“그렇지, 그렇지. 태양이 눈물을 철철 흘리게 잉?”

그렇다.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다. 잊지 않았기에 기다린다. 소나기 소식이 가짜 뉴스가 아니기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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