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노을 참 기묘하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내가 꼭 그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트럼프를 믿어도 될까? 내가 죽어서 백골이 되기 전에 나는 과연 내 발로 평양을 지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백일몽은 분명 아니겠고, 공상이나 망상 또한 아닌,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명확하게 정리할 만한 무엇이 없어서 조금은 애간장도 타 들어가는, 그러면서도 가슴은 날마다 새롭게 곱빼기로 설레어서 겨드랑이에 무슨 깃털이라도 돋아나는 것 같기도 한, 일언이 폐지하고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게 뉴스의 행간을 좇고 있는 참인데 뽕밭의 초보신선 오-형렬이가 전화를 걸어 와서는 대뜸 묻는다.

“야 수복아, 너 믓허냐.”

글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딱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빈둥빈둥 발장난이나 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온 종일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도 다음 날 보면 내가 놓친 뉴스가 수십 아니 수백 건씩 발견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밤낮 가림이 없이 바쁜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할 일이 많아서 바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무 할 일이 없을 때도 그냥 바쁘다. 그렇다고 할 일 없이 바쁘다는 말은 또 할 수가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녀석이 나를 꾸짖는다.

 

▲ 쑥밭이 된 뽕나무 밭
▲ 염소는 고집이 엄청 세다.

 

“야, 너 온다더니 왜 안 와?”

뽕나무 밭두렁에 지천으로 깔린 우슬뿌리를 캔다고 갔던 게 한 달 전이었다. 그 뒤로 언제 다시 간다고 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못 갔으니, 꾸짖음을 받을 만도 하다. 얼결에 그냥 대충 시간이 없어서 못 갔다고 했더니 너 어디 무슨 화성에서 떨어진 녀석이냐 하는 투로 일장 연설을 한다. 아무 때나 시간을 내면 시간이 있는 거지, 시간이 없어서 못 온다는 게 무슨 외계인의 문법이냐는 식으로 나를 힐난하는 녀석의 가르침을 듣고 있자니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친다.

시간이란 내가 필요할 때 내가 내는 것이지, 내 시간을 누가 내준단 말이냐. 녀석의 얘기인즉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신선이 되고자 했던 나는 아직도 신선의 발바닥 근처에도 못 미치고 있지만, 그는 이미 발바닥을 점령하고 발등에까지 올라앉았다는 느낌이다.

“오늘 올 수 있지?”

“오늘?”

“유식이가 온다고 했거든.”

“유식이가? 워매, 어쩐 일이래?”

“으응, 쑥 캐러.”

쑥이란 말에 나는 일단 말문이 막혔다. 이게 대체 뭔 소리냐.

“쑥? 쑤-욱? 쑥떡 해 먹는 그 쑤욱?”“그려 인마. 뽕나무 밭이 쑥 밭 됐잖냐.”

 

▲ 서릿발에 망가진 뽕나무

 

유식이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원래는 한 학년 위, 그러니까 일 년 선배였는데 뜨거운 물에 얼굴을 데이는 큰 화상을 입는 바람에 일 년 쉬었다가 우리랑 같은 반이 돼버린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제 색시랑 같이 쑥떡 해먹는 쑥을 캐러 온단다.

그나저나 뭔 소린지 모르겠다. 뽕나무 밭이 쑥 밭 됐다는 얘기는 이해된다. 풀 죽이는 약을 하나도 안치니, 한 뿌리만 있어도 온 사방을 제 영역으로 만들어 버리는 쑥의 놀라운 번식력이 뽕나무 밭이라 해서 그냥 둘 까닭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한 달 전에 갔을 때 뽕나무가 때 아닌 서리를 만나 냉해를 입고 말았다고, 시무룩해 하던 녀석이 느닷없는 쑥떡 타령을 하고 있으니, 신선의 발치에도 못 다가선 나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더러 쑥 캐러 오라고?”

“캐거나 안 캐거나 그건 너 알아서 하고.”

뭐 좋다. 어쨌든 가 보기로 했다. 얼굴 본 지 일 년도 넘은 유식이와 그 색시가 궁금하기도 했다. 가서 보니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그새 쑥을 한 지게나 베어다가 다듬기까지 해서 삶아내는 중이었다. 유식이는 아직 안 왔다. 점심 먹고 오후에나 온단다.

“우리도 쑥 캘까?”

가마솥에 삶아내는 쑥 향이 온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고전적인 향기에 취해서인지 나도 쑥을 캐다가 쑥떡을 해먹고 싶어졌다. 내 옆의 그녀는 나보다 먼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벌써 비닐봉지와 칼을 챙기고 있었다.

 

▲ 서릿발이 비켜 간 뽕나무

 

뽕나무 밭에 들어가서 보니 비닐봉지와 칼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뽕나무에 준 퇴비를 먹은 쑥이 그냥 무릎까지 올라올 정도로 자라 있었다. 낫으로 대충 베어다가 그늘에 앉아 다듬어야 할 일이었다.

“연하다, 참 연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계절에 어디에서 이렇게도 부드러운 쑥을 구경이나 할 것인가. 요새는 논두렁이건 밭두렁이건 제초제를 마구 사용하기 때문에 먹을 만한 쑥잎 한 장 구경하기도 어렵다. 뽕나무 밭에도 약을 치기로 하자면 못 칠 것도 없지만, 우리의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새끼염소 두 마리를 사다가 묶어놓고 먹어라, 풀을 뜯어먹어라,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염소가 미처 다 못 뜯어먹어서 무성해지면 예치기로 가끔 베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낫으로 쑥을 베느라 뽕나무 밭 여기저기 도처를 구경삼아 돌다 보니 서릿발 피해가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 뽕나무 밭 가에서 볼 때는 발견하기 어렵던 처참한 장면이 내부에서는 다 보인다. 이제 막 생긴 오디 열매가 서릿발에 타 버렸는데 떨어지지도 않고 나무에 달린 채로 바싹 말라붙어 보는 사람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내 짧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금년 봄은 유례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북‧미 정상회담 얘기로 정신이 바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봄바람도 정신없이 많이 불었고, 비도 많이 뿌렸다. 그리고 서릿발, 나도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돌연 출몰한 서릿발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사건이었다.

3월부터 덥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쑥쑥 상승하던 대기 온도가, 4월의 어느 하루 느닷없는 서리를 뿌려 버렸다. 그 바람에 열매와 잎이 거의 동시에 나오는 뽕나무 일부가 직격탄을 맞았다. 희한하게도 서리가 일정하게 쏟아진 게 아니라, 여기 조금, 저기도 조금 하는 식의 좋게 말하자면 무슨 모자이크 작품처럼, 나쁘게 말하자면 미치광이처럼 휘청거리는 식으로 내렸다.

그 바람에 서릿발이 스치고 지나간 뽕나무는 열매를 키울 수가 없어 일찌감치 빨갛게 태워버렸고, 서릿발이 비켜 간 뽕나무는 열매를 파랗게 키우다가 빨간 물을 들이고, 이어서 검붉은 색으로 익혀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 다 함께 모영 쑥을 다듬자.
▲ 뒷풀이가 없을 수 있나.

 

제아무리 신선놀이라도 밥을 안 먹고 살아갈 수 없는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일단 재해신청이라도 해보자 하고 재해신청을 했다. 그리고 실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느 하루 실사가 나왔는데, 실사를 마친 담당 공무원 가라사대 “농약값이나 좀 나올 거예요”, 하더란다.

이른바 귀농을 해서, 뽕나무 밭 하나에 밥줄을 걸어놓고 있는 오-형렬이로서는 이제 “굶어죽을 일만 남았는갑다”하고 쓴입맛이나 쩝쩝 다시던 어느 하루 쑥을 발견했다. 뽕나무 밭에 쑥이야 뭐 예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금년에는 유난스럽게도 탐스럽게 자라난 쑥들이 없는 입맛을 돋우었던가 어쨌던가, 초보신선 오-형렬이 부부는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쑥 자랑을 했다.

“우리 집 뽕 밭에 쑥이 너무너무 좋당게.”

그냥 자랑이 아니었다. 쑥이 필요하거든 와서 뜯어가라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떡방앗간 사람들이 쑥을 뜯으러 오고, 마을 이장 내외도 쑥을 뜯으러 오고, 이 사람도 오고 저 사람도 오고, 올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쑥을 뜯어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후발 주자인 셈이었다.

후발 주자인 우리가 쑥을 베어다가 한창 다듬고 있는 중인데 드디어 유식이 내외가 왔다. 얼굴을 보면 화상 자국이 너무도 선명해서 가슴이 막 짠해지는 유식이는 눈이 명품인 녀석이다. 소처럼 선해 보이는 녀석의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 어딘가에서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베어 온 쑥을 열심히 다듬는 동안 유식이 내외는 낫과 자루를 들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다듬은 쑥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 동안 유식이 내외는 쑥이 가득한 자루를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 우리는 몰려 앉아 그 쑥을 다듬기 시작했다. 유식이는 다시 자루와 낫을 들고 쑥밭으로 돌아갔다.

 

▲ 홀로 자갈밭에 앉아서
▲ 주인은 열심히 쑥을 삶아내고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다시 아궁이에 땔감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불 도사’가 되어 있었다. 가을에 메주를 쑤면서 익힌 기술이었다. 벽돌과 시멘트로 얼기설기 엉성하게 만든 아궁이에 큰 솥을 걸고 뽕나무 가지치기해서 말린 것을 땔감으로 쓰는데 연기도 안 나게 잘 땐다.

유식이는 또 한 자루의 쑥을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쑥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자루의 쑥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 자루와 낫을 들고 쑥밭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쑥 베는 재미에 취해버린 것 같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우리도 좀 더 베어올까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슬쩍 든다.

어쨌든 초보신선 오-형렬이는 계속 쑥을 삶아댄다. 그때 누군가 한 부부가 트럭을 몰고 왔다. 여기에 쑥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왔단다. 쑥밭으로 들어간 그들은 이십 분도 채 안 돼서 쑥 자루 두 개를 각자 하나씩 나눠 들고 돌아왔다.

이제 시간도 어지간히 됐다. 소나무 그림자가 훌쩍 길어졌다. 초보신선의 아내 영숙씨는 안주거리를 장만하기 시작했다. 주 메뉴는 곱창볶음. 실내 포장마차를 하는 여동생이 보내준 것이란다.

“야는 뭘 이렇게도 자꾸 보내는지 모르겠어. 보내지 말라 해도 말을 안 듣네?”

눈앞에 없는 사람을 나무라는 그 마음씨가 애틋하다. 술맛이 절로 난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술잔은 채웠다 하면 비워지고, 또 채웠다 하면 또 비워져 갔다. 그리고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다. 어지간히 취한 눈으로 하늘을 보니 어머나 이게 뭐냐. 노을이다.

언제 이렇게 됐단 말이냐. 해가 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서쪽 하늘에 문제가 생겼다. 살면서 이렇게도 이상하고, 이렇게도 현란한 노을은 처음이다.

“자연, 아 자연이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 시간은 아마도 꽤 오랜 세월 기억을 뭉클하게 채색해줄 것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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