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교섭
담대한 교섭
  • 이수호
  • 승인 2018.06.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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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칼럼>

북한과 미국이 싱가포르에서 한 판 싸움을 벌였습니다. 6.25전쟁 중 1953년에 맺어졌던 정전협정 이후 68년 만에 우두머리들이 만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전제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구축안에 합의한 것입니다. 실로 담대한 교섭이었습니다.

곧 이어 북한은 핵 폐기 절차에 들어갈 것이며, 북한을 겨냥한 한미군사합동훈련도 중지되고, 당사국들 사이에 종전선언도 조만간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북한의 비핵화 진척과 수준에 따라 국제사회의 여러 제제도 풀리고 평화협정도 맺으면, 북한도 정상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고 한반도의 평화는 봄을 맞겠지요. 

 


저는 이번 한반도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화 중심의 해결 과정을 보면서, 교섭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또 한 번 절감했습니다. 

첫째 교섭에는 때가 있습니다. 과일도 충분히 익어야 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덜 익은 과일은 꼭지가 떨어지지 않아 억지로 따다보면 가지가 찢어지거나 상처가 나고, 다 익었는데도 시기를 놓치면 저절로 떨어져 깨지거나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교섭도, 추수 때를 맞추기 위해 농부가 밭을 갈고 거름 주며 가꾸는 것처럼,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북한은 올 신년사에서도 밝힌 것처럼, 남한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시기에 맞춰 본격적 교섭에 돌입하기 위해, 때를 맞추려는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집중적인 핵과 미사일의 개발과 실험이었습니다. 

둘째 교섭에는 엇비슷한 서로 주고받을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교섭은 철저히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겨루기이기 때문에 힘이 센 쪽으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가 자본의 막강한 위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섭의 도구로 노동자에게 파업을 권리로 보장했겠습니까? 파업이야말로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세계 최강의 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의 카드는 핵무장이었습니다. 부시가 북한을 적대시하고 ‘악의 축’이라면서 국제사회에서 축출하려 한다든지,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며 도외시 하는 등, 미국 주류정치의 흐름이 북한의 핵무장을 도운 것이었고, 결국은 교섭력을 키워준 것이었죠. 완전한 핵 폐기와 체제보장은 서로에게 맞바꿀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교섭의 상대성입니다. 교섭의 가장 어려운 점은 다른 경기와는 달리 결렬도 중요한 전술, 전략이 된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불리하다 싶으면 그만두어도 그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북한 스스로도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는 벼랑끝 전술도 그런 의미에서 유용한 것이었죠. 또 교섭은 상대의 대응에 따른 전술적 위험과 실질적 위기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번 북미 교섭에서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상회담의 중단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즉시 오해를 풀어주면서, 믿음을 주기 위해 급히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는 기민함을 보입니다. 협상의 기술이지요. 만약 그때 문 대통령이 그 카드를 받지 않았다면 이번 북미 교섭은 큰 어려움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테이블의 세 주역은 교섭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협상전문가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넷째는 교섭의 진정성입니다. 교섭 책임자의 솔직한 적극적 태도입니다. 이번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있기까지 세 나라 정상이 보여준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하는 치열한 모습’에서 저는 이 교섭의 성공을 예상했습니다. 자기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면서도 남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절절했습니다. 이런 지도자를 국민들은 전적으로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교섭을 위임해준 단위의 확실한 신뢰 위에 있는 협상가는 언제나 당당하고 담대하며 책임을 다합니다. 

최저임금 문제로 저임금 노동자들과 노동단체들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인데도, 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선거에 묻혀 우리 사회와 언론은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썩은 과일처럼 어느 날 껍데기만 남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이번 남한과 북한, 미국이 교섭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처럼 우리 노동의 절실한 문제들도 당사자들의 담대한 교섭을 통해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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