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지지 않는 꽃-국화빵, 떡살, 메주꽃

▲ 화문(花紋)을 먹는 낭만, 국화빵. 함평장

입김 허옇게 추운 날, 장터에는 시방 국화꽃이 한창 피어나는 중이다. 꽃은 뜨겁고 볼록한 꽃봉투를 안은 이들은 걸음새가 바빠지게 마련이다. 그 온기를 식지 않은 채로 전하고 싶어서 종종걸음 하는 마음을 일러, ‘사랑’이라 한다.

〈연탄장수 울 아비/ 국화빵 한 무더기 가슴에 품고/ 행여 식을까봐/ 월산동 까치고개 숨차게 넘었나니/ 어린 자식 생각나 걷고 뛰고 넘었나니〉 (오봉옥, ‘아비’ 중)

장흥장에서 국화빵을 파는 하수정(66)아짐은 70년 넘은 국화빵틀로 국화를 찍어내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워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는 달인의 손길 속에서 이내 ‘뜨거운 국화꽃’ 흐드러진다.

 

▲ 한국의 절편은 ‘먹는 조각품’. 김규석(담양) 장인의 떡살

 

화문(花紋)을 먹는 낭만은 절편에도 있다. 어떤 이가 외국인에게 절편을 선물했더니 먹지 않고 굳혀서 벽에 걸어놓았노라 했다던가.

“한국의 떡에는 조각(彫刻)이 가득해서”였다고.

우리 떡에 새겨진 ‘떡살무늬’를 말한 것이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였으니, 절편에 살(문양)을 박아넣어 입에 넣기 전에 보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 심미안으로 ‘먹는 조각품’이 빚어진 것이다.

다양한 떡살 문양으로 생겨난 음과 양의 요철은 씹을 때 식감을 풍부하게 하고, 편떡을 상에 쌓을 때 미끄러지지 않고 높이 고일 수 있게 하였다. 혼수감으로 챙길 만큼 소중한 살림이었던 떡살은 행여 바뀌거나 잃어버릴까봐 이름을 새겨두기도 하였다.

 

▲ 오랜 시간 속에서 정성으로 피는 고요하고 웅숭 깊은 꽃. 이 나라 밥상을 환하게 하는 고마운 꽃 메주꽃. 화순 한천면 한천리

 

“여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조선조 문인 장학유의 ‘농가월령가’ 11월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콩을 삶고, 절구에 찧어 반듯하게 메주를 만들어 볏짚 위에 한 보름간 엎치락뒤치락 다독이다가 볕에 내걸면 쩍쩍 터지는 몸통 사이로 꽃눈이 튼다. 메주꽃이다. 짚에 있던 균이 옮겨 붙어 메주 몸에서 피어나는 곰팡이꽃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 정성으로 피는 고요하고 웅숭깊은 꽃. 이 나라 밥상을 환하게 하는 고마운 꽃이다.

 

▲ 해남 북일면 내동리

 

〈백 가지 꽃을 꺾어다 봤지만(折取百花看)/ 우리집의 꽃보다 못하더라(不如吾家花)/ 꽃의 품종이 달라서가 아니라(也非花品別)/ 우리집에 있는 꽃이라서 그렇다네(秪是在吾家)〉

“이렇게 이삔 꽃이 있으까!”

혹은 처마 아래 혹은 시렁에 매달려 집집이 피어난 메주꽃을 들여다보는 그 집 어매 할매들의 마음이 다산 정약용의 시와 한가지일 것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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