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부처를 만나다
입 없는 부처를 만나다
  • 가톨릭일꾼 김유철
  • 승인 2017.12.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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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김유철 칼럼

부처는 숨결 너머에 있는 것일까?

어스름 새벽이 열리던 시간에 길을 떠났다. 먼 길이었다. 넓은 강을 건너자 아침 이슬 먹은 흙이 누런 이를 드러낸 남도 땅으로 들어섰다. 눈이 왔으면 싶었지만 하늘은 회색구름만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천불천탑이 있다는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절집 마당에서 만난 흰 개는 자신의 목을 맨 줄을 탓하지 않고 그저 누워 있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고, 눈앞에 들이대는 사진기도 못 본 척 했다. 흰 개는 그저 오체투지 하듯 온 몸을 바닥에 밀착한 채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누워있다는 운주사의 와불을 미리 보여 주는 듯 했다. 마치 부처는 온 사방에 널려 있다고 흰 개는 큰 하품으로 이르는 듯 보였다. 과연 그 하품 너머에 부처는 있는 것일까?

 

▲ 사진=김유철

 

신라말 혹은 고려초에 운주사를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세웠다고 여러 갈래의 말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 시절 우뚝 섰다가 시절인연이 다 되었을 때 미련 없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사찰이 운주사다.

21세기 탐방객들은 결코 온전히 그 시절의 마음으로 들어설 수는 없다. 현재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운주사는 그 시절의 환영이거나 그림자일 뿐. 운주사 가람 곳곳에서 만나는 숱한 돌부처의 형태와 추상적 문양을 몸에 지닌 돌탑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분명한 다빈치코드의 파편들이다. 언덕에 방향성을 가지고 드러누운 두 와불까지 모두 그러하다. 운주사를 창건한 이들, 사찰을 가득 매우다 못해 인사동 골동품가게 이상으로 숱한 돌부처와 돌탑을 만들어 둔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숨겨진 다빈치코드를 찾아서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 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 배치와 불상 제작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석공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 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싶다.”(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참조)
 

말 없는 말

운주사에서 스쳐가기 십상인 것이 ‘입 없는 불상’들이다.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설명문에서 조차 언급되지 않고, 다녀간 사람들마저 “설마”라고 할 정도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지만 운주사의 바스라지기 쉬운 돌로 된 돌부처들은 태반이 입이 없다. ‘입 없는 부처’를 석공이 자진해서 만든 것인지, 돌부처를 주문한 사람이 요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그것을 미학적으로 혹은 불교철학으로 해석이야 분분하겠지만 그것은 마치 흔들림 없는 풍경소리 같은 것이고, 길 없는 길에서 듣는 ‘말 없는 말’의 울림으로 전해진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스님은 곧은 등의 자세로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했다. 독경은 언제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변함없이 사람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힘이었다. 운주사 뒷산인 천불산의 중턱을 오르도록 스님의 독경은 낮지만 짙게 이어졌다. 명치끝으로 ‘숫타니파타’의 말씀이 투득 소리를 내며 찔러왔다.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근심이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오지 않는 눈발을 기다리며 길을 떠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전의 ‘으뜸가는 행복’을 전해준 부처의 말씀이 오늘따라 명치끝을 툭 툭 건드리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경전의 말씀을 행하지 못한 것이야 깨달음의 길이 아직 먼 것이지만 스스로가 세상일에 부딪혀 마음이 흔들렸고, 걱정과 근심을 한도 끝도 없이 쏟아내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것을 ‘입 없는 부처’ 앞에서 거듭 느꼈다.
 

 

▲ 사진=김유철

그대, 이미 새 세상이니 일어나라

한 발 내디뎌보지도 않고 겁이 난다고 몸을 사리고,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서 자신이 없다는 말을 쏟아놓은 한 해의 그림자에게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다. 부처는 무엇이 더없는 행복이며 으뜸가는 행복임을 누워있던 흰 개의 모습으로, 목탁 두드리는 스님의 곧은 등으로, 산등성이 고사목으로, 해석되지 않는 문양의 석탑과 ‘입 없는 부처’의 묵언으로 전해주었지만 여지없이 사람 마음은 돌덩이였다. 돌로 된 석불도 미소 짓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도리어 굳은 돌덩이였다.

그가 일어나는 날 새 세상이 열린다고 여기는 누운 부처는 야트막한 산등성이 위에 있었다. 바람 스치기 좋은 자리였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마주하기 좋은 하늘 아래였다. “찾는 길이 있더냐?”고 누운 부처는 서서 보는 이에게 물었다. 어느덧 누워있는 것은 나였고 부처는 우뚝 서 있었다.

“때가 되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일몰 앞에 서게 된다.
그 전에 맺힌 것을 풀어서
안팎으로 걸림 없이 자유로워져야한다.
그 짐을 다음 생으로 지고 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날이다.
무릇 묵은 시간에 갇힌 채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아야 한다.”
(법정, <일기일회>, 문학의 숲, p.211)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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