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한 해가 기울어가며 연말이 다가오자 예외 없이 사면(赦免)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형사정책처럼 중요한 일도 많지 않은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처벌을 내리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범죄자들에게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죄를 용서해주는 사면 또한 매우 중요한 정책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사면정책은 올바르게 집행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선의 대표적인 법률가였던 다산은 지금부터 200년 전에 사면정책에 대한 귀중한 논문을 써놓았습니다. 「원사(原赦)」라는 짤막한 글 한편에는 그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국의 높은 정치가가 죽음에 임해서 황제에게 ‘신무사(愼無赦:신중하게 재판하여 한번 처리된 범죄인은 사면해주어서는 안된다)’라는 세 글자를 아뢰었다”라고 글의 허두를 시작합니다.
“그런 이후 세상에서는 모두 그 정치인의 말이 요령 있는 말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 말이야말로 크게 어질지 못하고(不仁) 또 매우 지혜롭지 못한(不智) 말이라고 여긴다. 형벌을 내리는 근본 뜻이 그 사람을 아주 미워하여 고통과 아픔을 계속 당하도록 하려는 것이겠는가. 장차 고통과 아픔을 당하므로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개과천선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말하여 개과천선한 사람이야 지체 없이 사면하자는 주장을 폈습니다.

그러면서 또 말합니다. “죽을 때까지 죄인을 사면해주지 않는다면 한 번 형벌이나 법의 함정에 빠지면 그냥 자포자기하여 죽이지 않은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죽이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며 “더구나 그 사람의 죄상이 모두 진실된 사실이고 결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수도 없거니와 더러는 참소나 무고를 당하여 죄를 얻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분노 때문에 법에 걸려든 사람도 있는데, 정말로 모두를 사면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망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고경(古經)에 나오는 사면의 대원칙, 형사정책의 요체를 인용합니다.
“공경스럽고 신중하게 벌을 내리되 형벌을 받은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欽哉欽哉 惟刑之恤哉:書經, 呂刑)”라는 인도주의의 형벌론을 거론합니다. 문제는 조선시대나 현대에서 경축절이면 사면하는 제도를 아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소한의 기한을 정해 놓고, 그런 기한 안에 개과천선의 실체가 확인된다면 지체 없이 사면해야지, 전혀 개과천선은 없는데, 국경절이라고 그냥 사면하는 그런 나쁜 제도는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개과천선’이라는 실질적인 반성이 없는 죄인을 사면하는 바람에 우리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해야합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권력의 영구화를 위해 1980년 광주의 양민을 학살한 두목들을 개과천선도, 반성도, 잘못의 뉘우침도 없는 상태에서 사면해 주고 나니, 회고록을 통해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는 파렴치한 죄인들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아픔을 생각해야 합니다.

진실로 개과천선한 선량한 범죄자들이야 반드시 사면해야 하지만 반성도, 뉘우침도 없는 악인들을 사면하는 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을 다산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지역화합이니 국민통합이니 화해분위기라는 등의 법 논리 밖의 이유로 사면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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