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세번째 이야기 / 강진수

남미를 다녀온 지 다섯 달이 넘었다. 신기하게도 남미 여행을 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새록새록 남는 것 같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각 나라의 각 도시들, 마을들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아직도 가끔씩은 내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그곳을 걸어 다니고, 그곳을 헤매며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별들처럼 설레는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5.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짐을 쌌다. 이카로 가기 위해선 아침 일찍부터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택시비를 아껴보겠다고 우리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휴대전화 지도로 걸어가는 길을 확인하고 무작정 호스텔을 나섰다. 안녕, 리마. 우리는 먼저 리마에게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생각보다 리마라는 도시는 크지도, 상당히 아름답다고도 할 수는 없었지만 하루 만에 우리는 리마에 정 들었다. 피스코 사워를 마시며 저녁 식사를 하던 리마의 풍경은 우리에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로컬 식당에서 아무렇게나 점심을 시켜먹던 여행 초짜의 우리 모습도 전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안녕이라니. 우리는 헤어지는 것에 늘 어색해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참 땀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을 때 쯤, 우리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리마의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동차를 움직이는 대로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딱 봐도 여행객인, 큰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자동차를 따라 헤매는 우리의 모습. 힐끔힐끔 지켜보는 사람들. 다행히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우리는 길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우리는 띄엄띄엄 버스터미널이 어디냐고 물어봤고 용케 알아들은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지도를 보고 차분히 우리의 위치를 확인했다. 걸어온 만큼 더 걸어가야 하는 먼 길.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형이 일단 다리를 하나 건너야겠다고 말한 뒤 무작정 다리를 건너가려고 했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던 할머니와 여자 한 분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치는 김에 길을 물어보려고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온갖 스페인어로 마구 대답을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고 손을 저으면서도 계속 그 반복되는 스페인어 말씀을 차근차근히 들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내 귀에는 ‘도둑’이라는 한 단어가 들어와 박혔다. 즉, 이쪽 길로 가면 도둑이 많으니 다른 길로 돌아서 가라는 뜻이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게 좋겠냐고 되묻자, 그들은 바로 아랫방향에 있는 다른 다리를 건너가면 바로 터미널로 갈 수 있다고 답해주었다. 물론 손짓 발짓으로.

 

 

그렇게 마음씨 좋은 할머니와 여성 분 덕택에 위험을 피하고 터미널에 닿을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터미널이 눈앞에 보였다. 터미널에 들어가자 또 다시 쏠리는 시선. 우리는 대체 누가 봐도 여행객, 그것도 멀리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인 티를 내며 터미널을 돌아다녔다. 짐을 누군가 훔쳐가려 할까봐 배낭을 더 꼭 쥐어 들면서. 곧 수속을 했고 버스에 올라탔다. 올라타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 버스가 이카 가는 버스가 맞냐고 물었다. 마침내 출발하는 버스. 차창을 가만히 바라다보면서 다시 안녕, 안녕, 속으로 하나씩 인사를 나눴다. 모든 것이 인사의 대상이다. 도시의 높은 빌딩들도, 차도들도, 내가 길을 잃어 헤맸던 공원 앞과 자동차, 마음씨 좋은 할머니와 여자, 그 외에도 길을 알려준 많은 사람들, 호스텔 직원, 호스텔 루프탑과 그곳에서 마신 맥주 4병. 모두 안녕.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희망과 기대는 걸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언젠가 다시 오더라도 이곳은 색다르면서도 늘 같은 모습일 테니까. 못할 것만 같은 것들을 모두 이루고, 처음으로 남미에서 다른 도시로 그것도 내 온전한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나친 설렘들이 차창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 지나친 설렘이 너무나도 많이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6.

5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이카는 사막의 도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쿠스코로 가는 버스를 미리 끊어두고, 우리는 이카에서도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을 가기 위해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탔다. 조금 달려서 가다보니 금방 와카치나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오아시스를 주변으로 둘러싼 호스텔과 식당들.

문제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진 것이다. 아직 호스텔을 잡지도 못했는데 소나기에 온몸이 홀딱 젖어버렸다. 게다가 호스텔들이 전부 우리가 생각했던 가격보다 훨씬 비쌌다. 여행객들만 있는 마을이라 그렇지만 우리는 가난한 대학생 여행객. 값을 비싸게 치르고는 머무를 수 없었다.

 

 

비를 맞아가면서 여기저기 호스텔을 돌고 있는데, 뒤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저기요, 한국 분이시죠?” 한국인 여성이 우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물어봤다. 우리는 낯선 땅에서 만난 한국 사람에게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와카치나에서 머무른 지 이틀 정도 됐다고 했다. 그새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같이 여행 중인지 그녀의 곁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국인 한 분이 함께 있었다. 저기, 조금 저렴한 호스텔을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나의 물음에 살짝 웃어 보이며 여기저기 호스텔을 몇 군데 추천해줬다. 물론 나중에 가서는 그녀가 추천한 곳에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좁은 마을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겨우겨우 비를 피해 우리는 배낭여행자들이 머무른다는 호스텔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그러고 나서 곧 버기투어가 있다기에 프런트로 가서 투어를 예약했다. 비가 내려서 걱정이었지만 투어 시간이 다가올수록 빗줄기는 얇아지다가 곧 그쳤다. 꼭 신의 계시 같았다. 오늘만큼은 너희를 보살펴주겠다고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정말 맑게 개인 날씨였다. 이대로라면 사막 한 복판에서 석양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샌드보딩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방송에서만 보고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오늘 이 순간 경험하게 되다니. 사실 나보다 형이 더 설레 보이고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 사막에 갈 수 있다는데.

 

 

곧 버기차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스릴감을 느끼며 버기차의 매력에 푸욱 빠질 수 있었다. 사막의 능선을 따라 떨어지기도, 오르기도 하며 곤두박질을 반복했다. 사구 끄트머리에 선 버기차는 잠시 멈춰 서고 샌드보드를 하나씩 받았다. 모래사장 한 복판에서 사구를 따라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3개의 코스가 있었는데 3번째 코스가 가장 난코스였다. 1, 2번째까지는 꽤나 잘 타다가 3번째에서 사고를 쳤다. 미끄러져서 훅 떨어지는 부분에서 굴러 떨어진 것. 별 탈 없었지만 이 부끄러움, 창피함.

사막 한복판에서 떨어지는 석조를 보니 그런 마음 모두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막은 커다란 태양을 등지고, 모래들은 다양한 빛깔을 냈다. 이런 느낌 때문에 사막을 찾는구나. 떨어지는 모든 것 아래로 나의 눈물도 한 방울 떨어졌다. 사막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눈부신 모래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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