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바지락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먹거리 중에 하나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는 느낌이다. 먹는 사람 본인들이야 그런 느낌까지 받지는 못하겠지만, 양식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생각을 해볼 필요도 없이 몸으로 그냥 느낀다. 명절이 다가오면 바빠지고, 연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신없이 바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양식장에서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굳이 코를 킁킁거리지 않아도, 주위 사방을 둘러보지 않아도 그냥 몸에서 가을 냄새가 느껴지는 계절이 어느새 와버렸다. 딱히 무슨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괜히 바빠지는, 바쁜 일이 없다면 바쁜 척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이 계절이 오면 갯마을 사람들 머릿속에는 비상등이 켜진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바지락이 입을 쩍쩍 벌리고 하나씩 둘씩 죽어가기 때문이다. 순수한 국산 혈통 바지락은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넘어도 문제없이 잘 살아가지만, 종패를 중국에서 가져다가 키운 녀석들은 일 년이 한계생명인 까닭에 죄다 캐내야만 한다.

 

 

그렇다고 팔아줄 사람도 없이 마구 캐낼 수는 없다. 비싼 종패를 중국에서까지 들여와서 비싸게 키운 조개를 판로도 없이 막 캐내서 떨이요, 싸구려요, 그렇게 처분해 버리고 새로운 종패를 사다가 뿌릴 정도의 무모한 배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 주문이 없으면 내일은 있겠지, 내일 주문도 없다면 모레는 주문이 줄을 잇겠지, 하는 기대와 희망, 설렘 같은 진득하게 지속적인 인내심이 없다면 바지락 양식 못 한다. 물론 진득한 인내심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만 해도 판로가 없어서 못 캐고 그냥 죽게 내버려둔 바지락이 족히 십여 톤은 됐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사정이 확 달라졌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도 전부터 주문이 쇄도한 까닭은 무엇인가. 연말이 가까워지면 매년 가격이 떨어지던 바지락이 금년에는 하나도 안 떨어지고 오히려 상승세를 탄 까닭은 또 무엇인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당국의 어떤 정책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성패 물량이 대폭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추석을 전후해서 약 보름 동안은 아예 한 마리도 안 들어왔다. 그 바람에 고창의 하전 갯벌은 밤낮으로 즐거운 몸살을 앓아야 했다.

만약에 주변 사방에 외국인들이 숨어 있지 않았다면 그런 즐거운 몸살은 아마 꿈속에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 몫을 해야 하니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는 사람이 여기저기 도처에서 나왔을 것이고, 어쩌면 갯벌에 코를 박고 쓰러진 채로 다시는 못 일어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쓰러지거나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이 즐거운 웃음꽃만 만발했다.

한때는 ‘외국놈들’이라고 한껏 폄하해서 불렀지만, 지금은 그냥 ‘외국인들’이라고 부르는 그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데려오는지 정도는 알지만 그 이상은 알고자 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소개비와 교통비 그리고 위험부담 비용이 따로 붙는 까닭에 인건비가 한국인보다 이십 퍼센트 가까이 더 발생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한국인보다 작업 능률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작업 지시에 어려움이 따르고, 손짓 발짓 등으로 대충 어떻게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했다 해도 뜻밖의 일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니 불안하다. 닳고 닳았다고 자부하는 한국 사람도 자연의 마음을 모르는 까닭에 툭하면 찢어지고 깨지는 판에 외국인 노동자가 만약에 덜컥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한국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현상은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한국 사람이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방황한다고 하지만 농어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정도가 돼버렸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대한민국 땅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고. 그렇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의 이 땅덩어리. 차암 넓기도 하다. 쌀이 남아돈다고 농사를 짓지 말라고, 직불제란 이름의 농사 안 짓는 제도를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할 사람이 없다. 그나마 있는 사람조차도 오늘이냐 내일이냐,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이상의 무슨 큰 희망이 있겠느냐고 중얼거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누군가 죽었다고, 장례식장을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사흘도 안 돼 누군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고, 다시 하루 뒤에는 또 누군가 죽었다고, 조의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농사나 어업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 둘씩 떠나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다고 후손들이 도시에서 가끔 내려오기도 하지만, 길면 삼사 년이요 짧으면 한두 달이다. 올 때는 요란하지만, 갈 때는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귀향했다는 사람들을 별로 잘 믿지 않는다. 오면 왔구나, 하고, 가면 갔구나, 할 뿐이다.

그렇게 떠나가 버리는, 농업이나 어업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탄핵해야 할까? 물론 아직 그런 젊은이들을 싸가지 없다는 등으로 욕하는 어른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공감한다. “아이고 잘 갔제 뭐 잘 갔어” 하고 말이다.

경운기나 트랙터를 몰고 갯벌에 들어갔다가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펄에 빠져서 다시는 못 나오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고 있어야 하고, 달리는 트랙터 뒤에 타고 있다가 아차 잘못해서 떨어지는 불상사 역시 각오하고 있어야만 하는, 즐겁게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긴장을 하고 또 조심을 해야만 하는 작업이 수입이라도 썩 좋다면 아마 생명보험 차원에서라도 해보겠다고 덤비는 젊은이들이 꽤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영 딴판이다.

 

▲ 부족한 잠을 채우며 기다리는...

 

만약에 농민이나 어민들이 일일 여덟 시간 노동에 주 오 일 작업을 한다면 아마도 법정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아침 일곱 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일곱 시 무렵에 끝나는 여성 인력의 경우 일당이 육만 원이니까 계산은 아주 간단하다. 그나마 일이 날마다 있는 것도 아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중에 아마 이백 일 정도 일을 나가면 엄청나게 많이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등골 빠지게 일만 하다가, 관절염이다 신경통이다 온갖 병치레를 하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시가 농어촌을 착취하는 구조가 돼버린 이런 심각한 상황을 정부 당국도 인지하고 있다고 툭하면 언론 브리핑을 하지만, 립서비스 차원을 벗어나본 적은 유사 이래 한 번도 없었다. 먹을 것을 생산하는 사람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을 가진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공무원 시험 같은 데서나 빛을 발할 뿐이다. 현장에서는 북한 사람 데려다 쓰면 안 될 이유가 뭔지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등의 파격적인 논의가 있기도 하지만, 정작 그런 문제를 앞장서 다뤄야 할 정부 당국자들은, 글쎄, 그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온통 청맹과니에 밥버러지들뿐이라는 극단적인 비판 앞에서 그대들은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숨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숨어 있는 까닭은 이른바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불법이란 딱지가 붙어 있는 까닭으로 그들은 늘 불안하고,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줄담배를 피워댄다. 갈림길이나 마을 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연기를 잇달아 뿜어내면서 핸드폰을 귀에 대고 암호문 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 더듬어보게 한다.

불법 체류 외국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등으로 관리하는 공급업자가 승합차를 몰고 다니며 여기에 한 명, 저기에 두 명, 하는 식으로 떨어뜨려 놓는 외국인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 그들은 그 가방을 여간해서는 자기 몸에서 떼어놓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생명줄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권과 전화기 그리고 담배는 그들의 생명이요 존재증명인 셈이다.

 

▲ 여권이 든 가방을 앞에 놓고 시간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

 

“아이 저놈의 담배 땜에 내가 그냥 환장하겠네 씨이.”

남자들은 가끔 그렇게 투덜거리기도 한다. 어렵게 담배를 끊었는데 담배 냄새를 자꾸 맡으니 다시 피고 싶기도 하고, 그 냄새가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머니들도 담배 연기를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짜증을 내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담배 연기 냄새가 맛나게 느껴진다느니 어쩌느니 ‘흰소리’를 중얼거리며 뽀짝뽀짝 다가앉는 대범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아주머니들은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좋아한다. 아주머니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의 나이가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비교적 젊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남자들은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인 남자는 가끔 뭘 ‘잘못 처먹었는지’ 조개가 조개를 잡으러 간다는 둥의 미치광이 같은 농담으로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는 ‘놈’이 있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에게서는 그런 무례를 당할 염려가 없고, 무엇보다 아이 같아서 정감이 가기 때문이란다.

어린아이, 그래, 그것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서툰 한국어로 뭐라고 할 때, 그때 아주머니들의 눈빛은 초롱해진다. 금방이라도 끌어안을 것 같고, 엉덩이라도 토닥거려줄 것만 같은 표정으로 응, 응, 하는데 영낙없는 엄마의 그것이다.

“아이고 참말로, 꼭 우리 아들 같당게. 칵 그냥, 찌버까주고 싶네.”

전라도 말로 찌버깐다는 것은 꼬집는다는 뜻이다. 애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애정의 대상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져서 살짝 한 번 꼬집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공통된 심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노동자 자신도 곧잘 자신의 엄마를 느낀다. 갑자기 황망해진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끔벅끔벅하고 있을 때, 그때 우리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렇게도 기다리고 저렇게도 기다린다.

 

엄마는 아이에게 뭔가를 자꾸 주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다 늙어서 죽을 날이나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아주머니들은 가능한 한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이를 낳아서 품에 안고 있을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서, 아이의 입에 뭔가를 넣어주고자 한다. 애석하게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이가 아니라서 입에 직접 뭔가를 넣어줄 수는 없고, 손에 쥐어준다.

“아 이것 좀 먹어봐.”

어떤 아주머니는 단감을 가져와서 깎아주고, 다른 아주머니는 떡을 가져오고, 또 어떤 아주머니는 간밤에 제사를 지냈다고 온갖 고기며 전 같은 것들을 가져와서 펼쳐놓기도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것을 맛나게 먹어주지 않는다. 먹어도 조금, 아주 조금 맛만 보고 만다. 어서 먹으라고 채근을 하면 당황한 표정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들이 그나마 많이 먹는 것은 오직 한 종류, 커피나 식혜 같은 음료수 계통의 것들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왜 안 먹지? 처음에는 우리나라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까닭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과일도 안 먹는 까닭은 뭐라고 해석하지? 말이 안 통하니 직접적으로 꼬치꼬치 캐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충 어떻게 물어보면 그저 웃지요, 하는 투의 민망한 웃음이나 흘릴 뿐이었다.

왜? 왜? 왜?

아주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묻고, 옆에 사람에게도 물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고, 안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문제가 확 풀렸다. 참으로 허망하게도 순식간에 확 풀렸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 자신이 미주알고주알 식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엉덩이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어보인 것일 뿐이었다.

 

▲ 이렇게도 질퍽한 일을 좋아할 사람은 누구인가.

 

아, 그것이었구나. 아주머니들은 소리를 질렀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을 때나 지름직한 환호성이었다. 환호성은 이내 혀 차는 소리로 바뀌어 갔다. 어떤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시상에나, 으째야 쓰까 잉.”

정말로 그렇다. 갯벌 한복판 도처에 화장실을 설치할 수도 없고, 우리처럼 적당히 기회 봐서 아무 데나 쭈그리고 앉아 해결하면 된다고 가르칠 수도 없다. 어쩌면 똥을 아무 데나 싸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최고의 자존감일지도 모르니. 그나저나 똥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그것을 남들이 안 보게 처리하라고 가르쳐 왔던 것일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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