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밝았던 다산의 선문답
불교에 밝았던 다산의 선문답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7.10.16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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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며칠 전 정민 교수가 『다산 증언첩(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7)』이라는 책을 보내왔습니다. 다산의 출판된 문집에 실린 증언(贈言)들은 오래 전에 필자가 번역하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로 출간되었지만, 이번의 책에는 문집에 실린 증언 이외에 새로 수집된 많은 증언을 번역하고 해설해서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하였습니다. 다산의 글이라면 종이쪽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모아서 간행해주는 정교수의 부지런함에 칭송의 말씀을 먼저 전해드립니다.
 
좋은 내용이 많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선문답」이라는 소제목으로 침교 법훈, 초의 의순, 인허(印虛) 만순(萬淳) 등 세 학승들과 선문답을 주고받은 글을 읽으면서 다산의 뛰어난 선지식(禪知識)에 감탄의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언제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산이었지만 그에 대한 높고 깊은 수준에 대해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순은 먼저 진로쇄탈(塵勞灑脫)하고 의순은 천답실지(踐?實地)하고 법훈은 모름지기 초투오란(超透悟?)하라” 세 스님들이 힘써야 할 삶의 방향을 먼저 제시해줍니다.
 
만순이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티끌이 가득한 세상에서 쇄탈합니까?” 라고 묻자 다산은 “가을 구름사이의 한 조각 달빛(秋雲一片月)”이라 답합니다. 의순이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실제 일을 실천합니까?” 다산이 답합니다. “날리는 꽃 서울 하늘에 가득하다(飛花滿帝城)”라고 답합니다. 법훈이 묻습니다. “깨달음의 관문을 어떻게 터득합니까?” 이에 다산은 “나는 새 그림자가 차가운 방죽을 건너가누나(鳥影渡寒塘)”라고 답했습니다. 어떤 고승이 그런 정도의 선문답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사서육경(四書六經)의 연구에도 온갖 난관을 겪어야 했는데 어느 시절에 선의 경지도 그렇게 높을 수가 있었을까요. 5언시들이 그렇게 훌륭합니다. 티끌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가을 구름 사이의 밝은 달빛처럼 밝아야 한다. 의순은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 꽃잎 날리는 저자로 내려와 삶의 실제를 실천하라고 합니다. 법훈에게는 지나가버리는 새의 뒷모습처럼 툭 터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법훈·의순·만순 등 제자와 같은 젊은 학승들의 인품과 사람됨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지닌 약점을 보완하여 수준 높은 선승(禪僧)이자 학승(學僧)이 되도록 올바른 가르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역시 사람 알아보는 다산의 지인지감(知人之感)은 탁월하기만 합니다. 젊은 시절에 정조라는 학자 군주와 학문토론을 통해 경학과 경세학에 익숙한 연마를 거치고, 벼슬하던 시절이나 곡산도호부사 시절에는 익힌 학문과 닦은 경륜으로 백성 살려내는 애민(愛民)과 치인(治人)에 정성을 다 바쳤던 다산이었습니다. 40세 이후 귀양 살던 시절에는 다산초당 인근의 스님들과 어울리며 불교 경전도 연구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평생을 선학(禪學)에 몸을 바친 학승들이 삶의 도리를 다산에게 물었던 선문답을 읽으면서 학자란 그런 정도의 진리탐구에 열성을 보여야만 학자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산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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