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기간 동안 가장 주목한 것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공사가 진행되던 중에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의 모습입니다. 이들 주민 일부는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에 적극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 분위기에 짓눌려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은 소극적이며, 침묵하고 있습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이 고시될 때부터 가장 강렬하게 반대했던 주민들이 왜 찬성을 하고 있을까요?

그토록 반대했던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가 이 지역 어디에서도 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집 마당에서도 동네 골목길에서도 바다 위 삶의 현장 어디에서도 핵발전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서생면 주민들의 마을 어디에서도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장영식

 

1년 전,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두려웠던 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 건설 때, 온갖 소음과 폭발음 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에서 온갖 짝퉁 부품을 보도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 간에는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의 문제점과 그 위험성에 대해 귓속말로 주고받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생면 주민들은 어차피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떠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핵발전소가 보기 싫어 새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했던 주민들의 모순된 삶의 모습이 핵발전소를 찬성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새 핵발전소가 건설되어야 자신들이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참담한 현실의 이유가 전부인 것입니다.

 

▲ 서생면 주민들은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 고시 때부터 거센 반대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신고리 핵발전소 1-4호기는 건설되었습니다. 서생면 주민들은 위험한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특히 도로 하나를 두고 핵발전소를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는 신리 마을 사람들이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국가와 한수원이 마땅히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을 주민들의 책임으로 떠넘겨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나쁜 정부였으며, 나쁜 기업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정부와 한수원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여부를 묻기 전에 신리 마을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과 집단이주 문제부터 해결했어야 합니다. ⓒ장영식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가 있는 서생면 주민들의 삶의 현장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공사 현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이 모순된 삶의 현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핵발전소를 이고 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를 자율 유치를 선택하면서 집단 이주를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핵발전소가 싫어서 핵발전소를 선택한 것입니다. 새 핵발전소가 건설되어야만 지긋지긋한 핵발전소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주민들의 삶의 현장은 핵발전소를 반대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찬성해야 하는 역설의 현장인 것입니다.

누가 이들에게 찬핵론자라며 돌을 던지겠습니까.

 

▲ 핵발전소가 싫어서 핵발전소를 선택한 마을이 있습니다. 새로운 핵발전소가 건설되어야만 지긋지긋한 핵발전소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주민들의 삶의 현장은 핵발전소를 반대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찬성해야 하는 역설의 현장이며 고난의 현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슬픈 마을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지역을 희생하고, 사람들의 삶의 희생을 강요하는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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