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이수호의 일흔 즈음에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프더라도
이미 지난 일이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지나가자
들추어서 바로잡고
설명하고 해명하고 변명하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그래서
결국은 더 허탈하거나
마음 짓뭉개지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
보이지도 않으면서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없이 내를 건너온 바람처럼
먹구름 뒤에서도 빛나는
돌배기 웃음 같은 햇살처럼
한낮의 고요도 두려워하지 않는
바위 비탈 홀로 핀 산나리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시간은 가고 또 흐르나니
과일도 바람과 햇살 속에서
고독한 날을 홀로 보내야
빛깔이 변하고 속이 단단해지듯
모든 여름은 그렇게
새로운 씨알이 되는데
그제 지나간 바람 어제 빛나던 햇살
그걸 되씹는 일이
내 속을 멍들게 하고
비로소 썩게 하는 일 외에
아무 쓸모가 없다면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났음으로
그냥 지나간 시간에 맡겨버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의
바람과 햇살에 몸을 맡기고
무엇에도 걸리거나 막히지 않는
그런 자유가 되어
모든 사랑의 벗이 되어
빛나는 해방으로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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